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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장군이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이유
신립은 어째서 천혜의 요새 조령을 버리고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패하였을까? 중과부적으로 패할 수 밖에 없었던 탄금대 전투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파죽지세로 밀려들어오는 왜군을 맞아 첫 제승방략 체제를 가동한 신립 직속 휘하의 8천 조선군(기병 3천)은 왜군 제1군 고니시 선봉부대의 1만5천 왜병과 최후의 일전을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기병을 주력으로 했던 조선군은 두 배가 넘는 적의 압도적인 병력과 조총부대의 對기병연사전술,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병에게 불리한 습지대 지형지물(기병의 말발굽으로 인해 물러지는 토질)로 인해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였으며, 삼도순변사 신립은 적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적의 사기를 높여줄 수 없었기에(반면 아군의 사기는 더욱 참담하게 되므로) ..
2015.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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