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18회에서 마침내 이방지(변요한)와 길태미(박혁권)가 목숨을 건 진검승부를 펼쳤습니다.

  

 

물론 이들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게 된 것은 '삼한제일검'이라는 명성을 위한 것도, 善과 正義를 실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지켜내고 스스로 살아야 한다'는 그 무엇보다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한 이유가 이제껏 각자 일신이 달랐던 두 검객의 칼끝을 겨누게 한 것이죠.

   

그렇게 길태미(박혁권)와 이방지(변요한)는 당대 최고수들의 대결답게 한치의 물러섬 없는 운명을 건 진검대결을 펼칩니다.

  

  

대결 초반 쌍칼을 꺼내 빠르게 이도류를 펼치는 길태미 맹공에 이방지는 일시 수세에 몰렸지만,, 변화무쌍한 장삼봉의 태극검법을 전수받은 제자답게 여러 합을 거치는 동안 길태미가 시전하는 수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화로써 응전하자 결국 길태미의 빠른 快劍도 그 위력을 잃고 이방지의 공격에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직감한 길태미는 치명상을 입은 채 달려들어 이방지의 검에 의해 절명하게 됩니다.

 

새로운 삼한제일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두 고수의 대결 장면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록 악인으로서의 최후였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길태미가 외쳤던 마지막 외침, 그 처절한 절규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약한 자를 짓밟지 강한 자를 짓밟나? 약한자한테서 빼앗지 강한 자한테서 빼앗나? 세상이 생겨난 이래 약자는 언제나 강자한테 짓밟히는 거다. 천년전에도 천년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기는 것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진리는 '강자는 약자를 병탄(倂呑)한다. 강자는 약자를 인탄(蹸呑)한다' 이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는 이 절규로 인해 이방지는 물론 그 주변 인물들, 심지어 이 드라마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같은 이의 죽음으로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참담한 복선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길태미가 말한 천년 후를 살아가는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善과 正義의 定義는 무엇일까요?

 

은 악하지 않은 것, 즉 올바르고 착하며 인간의 意志에 있어 윤리적인 영역이 되는 도덕적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의는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즉 사람과 사회, 그리고 공동체에 있어 옳고 바른 도리를 행동으로써 행하는 바른 意義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동하지 않으면 이미 정의가 아닙니다.

  

  

정의를 행할 힘이 있으면서도 선하지 못한 자도 있고, 선하면서도 정의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선하다'라고 할 수 없고, '선한 것은 반드시 정의롭다'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선은 악도 포용하지만, 정의는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절대 가만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육룡이 나르샤에 등장하는 홍인방, 길태미와 같은 존재는 어떤 유형일까요?

물론 정의롭지도 선하지도 않은 인물이죠.

그렇다면 정도전과 이성계은 과연 어떨까요?

위의 두 사람보다는 정의로운 인물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상대적으로 최영과 정몽주에 비해서도 온전히 정의로울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이방지에게 패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길태미의 마지막 절규는 '정의는 없다'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마저 뛰어넘는 강렬한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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