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황후의 인기비결과 역사왜곡의 경계

  

  

드라마 기황후가 당초의 역사왜곡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1월 26일 기황후 10회 시청률 16.2%로 종합 4위, 드라마 3위)

 

그동안 여러 시대극이나 역사드라마는 인기가 높을수록 역사왜곡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역사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역사적 사실이나 특정 소재를 두고 어느 정도의 가공은 허용되는 것이 바로 역사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허용의 범주와 경계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은 '기황후는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으며, 드라마 기황후의 인기비결과 역사왜곡 논란의 쟁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貢女에서 元제국 正后 되다

  

奇皇后..

고려 출신으로 본관은 행주이며, 기자오의 딸로서 원나라 조정에 공녀로 보내졌으나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다가 혜종(惠宗, 順帝라고도 함)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아 황태자 '아유실리다라'를 낳으면서 본격적인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킵차크 출신 타나실리 황후가 일족의 반란으로 폐위되자 기황후는 제2 황후에 오르게 됩니다.

혜종은 타나실리를 폐위한뒤 총애하던 기황후를 정후로 삼으려했지만, 옹기라트 출신인 조정의 실력자 바얀의 반대로 바얀 후투크가 제1 황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혜종의 총애와 함께 아유실리다라가 황태자로 책봉되면서부터 황실 재정과 군권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실질적인 제1 황후로서 원 조정 실권자의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1365년 제1황후인 바얀 후투그가 죽자 기황후는 마침내 원의 정후(正后)가 되었습니다만, 황태자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정쟁과 각지의 반란으로 원의 국력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고려에서는 기철을 위시한 부원배들이 공민왕에 의해 숙청되고 기황후가 보낸 고려 징벌군 1만은 고려의 명장 최영에게 대패하게 되면서 대내외적인 기황후의 세력은 갈수록 약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결국 1368년 반란 세력을 통일한 주원장(朱元璋)이 明나라를 세우고 북벌을 단행하여 大都(지금의 북경)를 점령하면서 마침내 원(元)은 멸망하였으며, 혜종과 황태자 아유실다라 등은 上都(지금의 내몽골자치구)로 피신하였습니다. 

1370년 혜종이 죽자 아유실리다라가 北元의 昭宗으로 즉위하였지만, 몽골 지역으로 패퇴한 뒤 기황후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드라마 기황후에 대한 역사왜곡 논란

   

드라마 기황후의 역사왜곡에 대한 논란은 기황후에 대한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가공보다도 희대의 폭군으로 알려진 충혜왕에 대한 미화가 가장 큰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듯 합니다.

  

물론 드라마 기황후의 매회 오프닝 장면에서 미리 허구의 사실을 미리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지나친 가공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그릇된 관점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서 가공된 사실, 허구의 내용, 역사적 사실 등을 명시해 놓고 시청자들이 수시로 참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역사드라마에 대한 지나친 리얼리티즘은 오히려 드라마적 요소를 배제할 수 밖에 없는 장르적 한계성을 요구하게 됩니다.

드라마의 지나친 역사왜곡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경계를 허용해야 역사다큐멘터리가 아닌 창작물로서의 역사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그만큼 극의 짜임새와 탄탄한 연기력이 전제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만.

   

일각에서는 가공의 스토리가 들어간 역사드라마를 두고 뉴라이트 국사교과서 못지 않은 국사교육 파괴로까지 이야기 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는 본질을 너무 심각하게 과장하고 확대한 것 같습니다.

   

역사왜곡 드라마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조조가 관운장과 막상막하의 무술대결을 펼치고, 제갈공명이 맹획을 잡기 위해 부채 하나 들고 무림의 고수로 날아다니고, 조선의 왕이 다 구겨진 갓을 쓰고 무희들을 데리고 와서 중국 황족을 방탕하게 만들고, 고려의 태자가 송나라 조정에서 횡포를 부리는 등..  중화권의 드라마는 역사드라마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면서도 역사왜곡 수준은 우리의 기준에서 보자면 첨단을 걷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드라마의 역사왜곡(?) 못지 않게 불편한 것은 주구장창 거실 소파와 차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대사처리 연기와 잡담으로 일관하는 사무실 풍경, 그리고 막장스토리만큼이나 말꼬리나 잡는 대사들, 그리고 황당한 암세포에 대한 생명존중 가치를 보여주며 연장방송을 해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입니다.

   

  

기황후의 인기비결

  

그렇다면 기황후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하지원, 지창욱, 주진모, 백진희, 정웅인, 전국환, 이문식 등 출연진들의 뛰어난 연기력, 스토리 집중도를 꾸준히 이끌어가는 복수와 성공스토리의 과정, 그리고 코믹적 요소를 통한 긴장과 유머의 유연한 배열이 바로 기황후의 인기 요소라고 봅니다.

  

또한 아역배우들이 등장하는 기간을 짧게 하고 바로 성인 연기자들을 투입한 것은 하지원과 같이 연기력과 흥행력을 가진 배우들로 하여금 임펙트 있는 밀도감을 선사하도록 함으로써 시청률을 단번에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속전속결의 전개력이죠.

  

 

이러한 빠른 전개가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대본으로 표출되는 필력이라고 봅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한족이 아닌 원나라 황실을 무대로 하여 역사적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러나 한때 대륙의 대제국을 지배했던 고려의 여인 기황후와 그 주변인물들을 온전히 작가의 힘으로 재연해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높은 시청률로 반영된 가장 큰 밑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황후의 역사왜곡 논란에 대한 경계만큼은 보다 유연하게 허용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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