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세대의 위로주이며 대학가의 낭만이 담긴 막걸리에 대한 추억
막걸리..
전통주, 혹은 서민주라고도 하지만 시큼하고 텁텁하고 알코올 도수는 낮다지만 술기운이 확 오르고 뒤 끝은 영 개운치 않았던 술..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화학주로 제조되고 있는 소주에게 대중주의 자리를 빼앗긴 술..
물론 저는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는 아닙니다. 특별히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갑자기 막걸리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술이라면 누룩 근처에만 가도 꾸벅꾸벅 조는 제가 오늘은 막걸리를 한 잔 했어요.
막걸리에 대한 추억과 단상은 딱 두 가지입니다. (막걸리 자체에 환장한 건 결코 아니고요)
그 첫 번째는,, 어렴풋한 기억이긴 한데.. 아마도 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였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게 귀가하셔서 잠든 저를 깨우셨죠. 그리고 성탄절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때 얼근하게 취기가 오르신, 그런데 한껏 기분이 좋으신 듯 밝게 웃으시는 아버지한테서 진한 술냄새가 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막걸리 냄새였어요.
하지만 그런 아빠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힘든 일과를 마치시고 가족의 선물을 사신 다음 흥겹게 '대포' 한 잔 하신 거겠죠.
어렸을 때 저는 '왕대포'라고 쓰여있는 식당 간판을 보게 되면 '식당에서 왜 대포를 팔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밀주로 담근(?) 막걸리를 큰 대접에 담아 파는 가게였어요.
가장만 성실하면 넉넉하진 않았어도 정년 때까지 가장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도 한 가정이 생계를 꾸릴 수 있었던 시기..
바쁜 일과를 마친 서민 가장들이 애달픈 가족에게 돌아가기 전,
고되고 힘든 하루의 피로와 애환을 풀게 해 준 것이 바로 막걸리 대자 한 사발,
즉 대포 한 잔이었던 것입니다.
후줄근한 실비집이나 선술집에서의 막대포 한잔...
지금 보면 비록 세련된 그림은 아닐지 몰라도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는 훨씬 더 사람냄새가 나는 낭만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막걸리에 대한 두 번째 추억은 바로 대학 축제입니다.
아마 지금 대학가에서 축제를 한다면 주막 같은 건 하지 않겠죠..
그런데 저의 학창 시절에 대학축제 때가 되면 대학가 주변 막걸리가 완전히 동이 났었어요.
그때 캠퍼스를 진동하던 그 막걸리 냄새..
당시에는 그런 냄새 자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어쩌다 막걸리 냄새가 살짝 진동하면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애절하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부모님 세대를 느끼게 해 준 최근에 본 영화 '국제시장'이나 저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영화 '써니'를 보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 느낌입니다만..
그래서 오늘도 늦게 들어올 것 같은 축구마니아 남편이 클럽 축구 (사실은 예전 말로 조기 축구) 시합이 끝나고 뒤풀이 때 남아서 가져온 막걸리를 혼자 마셔 보고 있었어요. 확 오르네요~ ㅜㅜ
그래서 막걸리 반 대접에 완전히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 껏 취해서 옛날 추억들을 막~ 믹스하며 지금 이 포스트를 작성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막걸리 사진이라도 좀 많이 찍어 놓고 마실 걸 그랬네요.
오늘 정말 두서없는 감상을 술술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블로그가 좋다는 건 공개 일기장과도 같은 페이지도 마음껏 구성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모쪼록 주변의 소소한 모든 것과 잊혀 있던 추억들을 소중하게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문득 이러한 것들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누구에게나 분명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오늘 저에게는 정말 뜬금없이,,
어렸을 때는 어른들의 야쿠르트로 여겨져서 그 맛이 궁금했던,
그러나 지금은 가끔씩 추억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아이보리 바닐라 색채에 대한 느낌과는 전혀 달리,
마셨다 하면 여전히 적응은 안 되는 이러한 막걸리가 바로 그것이네요.. ^^;
에고,, 한 대접 다 마셨더니 취기가 막 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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