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세상의 강자입니까? 아니면 약자입니까?
불의한 것과 간악한 것을 보았을 때 분연히 응징할 수 있는, 그리하여 정의와 善을 구현할만한 힘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이런 것들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 하나 지킬 수 있으신가요?
악을 죽이고 약자를 지켜줄 이외수의 '칼'
만약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내가 힘이 약해 약자를 지키지 못하고, 정의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나를 대신할 세상의 유일한 무기를 만들어..
'내가, 아니면 합당한 인물이 이 무기를 가지고 정의를 구현하고, 약자를 지킬 수 있을까?'
피를 먹고 우는 칼
이러한 동기에서 탄생한, 이외수 작가의 오래된 소설, 칼..
여기에 등장하는 한 없이 나약한 주인공은(어쩌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를),,
온갖 불의를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 분노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분노를 대신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바로 악을 처단하는 명검을 제작하는 것!
그리하여 그는 한 없이 무력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점점 나아가 세상의 善을 구현해 줄 상징적인 무기인 칼을 제작하는데 일생을 걸게 됩니다.
그는 칼에서 마음의 평화를 의탁하였기에 명검을 제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게 되는 것이죠.
자신이 그 칼의 주인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이러한 명검이 탄생하면, 그 주인은 저절로 나타나리란 믿음을 가지고..
결국, 그는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명검, '우는 칼'을 만들어 내기에 이릅니다.
워낙 名劍이기에,,
위험에 처하거나 불의를 가까이하면 칼이 스스로 웁니다.
"웅웅~" 거리며, 불의를 참지 못해 당장이라도 달려가 악의 피를 흩뿌리기라도 할 듯..
하지만 이 칼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단 한 방울의 피값을 치르지 않고, 탄생한 명검은.. 마침내 주인공의 피를 희생의 대가로 삼아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결국 마음의 평화는,,
- 칼이 스스로 울기 전에,
- 아니, 칼을 만들기 전에
- 자신의 의지와 끝없는 수양으로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었음을,
- 그리고 자신의 정의를 다른 이가 대신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런 사실을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대가로, 자신이 만든 칼을 넘기는 그 순간 깨달았을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래도 자신을 지켜주고, 세상을 구할 칼이 하나 있다면,, 여러분이라면 정말 그 劍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칼의 탄생, 칼의 노래
풀무질을 한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돌아가신 숙부의 방안 가득히
보아라 한 물지게 노을만 엎질러져
활활 붉게 타고 있을 뿐
오랜 유랑에서 다시 돌아와
허물어진 집 터에서 닭들을 잠재우면
우리가 묵묵히 지켜온
저 적막한 어둠.
주인 없이 돌아오는 말들의 피곤한 그림자
말들의 피곤한 그림자
한밤중 차가운 달빛으로 칼을 닦고
칼의 시퍼런 울음을 듣던 숙부는
저 허공 어디쯤
아직도 칼의 울음을 데리고 잠든 풀잎들을 깨우고 있는가?
풀무질을 한다.
한 부삽씩 우리들 믿음을 퍼 넣으면
허약한 젊음 버림받은 서적들을 불태운다.
숨죽이는 바다, 긴장하는 달빛
묘지마다 비석들이 눈을 뜨고
죽었던 이들의 무덤마다에서 징이 운다.
은둔 끝에 우리는 동굴이 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울음이 되고
풀무질을 한다.
바람만 불어도 허물어지는
이 세상 모든 것들아 잠들지 마라
이 세상 모든 것들아 잠들지 마라
뜨거운 불 속에서 타고 있는
우리들의 뼈를 보라.
오 어둠 어디에서고 꺼내 들면
그 어떤 어둠도 깨어지고..
마침내 우리는 쏟아지는 빛 속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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