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깨비는 정말 아직까지 여운이 남을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고 코믹했던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의 민담 전설, 혹은 전래동화로 전해져 온 설화를 모티브로 도깨비와 그의 신부, 기억을 잃은 저승사자가 기묘한 동거를 시작면서 삼신할매와 그를 섬기는 가신, 짖궂은 신, 환생한 사람,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원혼 등과 함께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으로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는 로맨스 판타지적인 요소와 깨알같은 코믹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지금도 재방을 꼬박 챙겨볼 정도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우리나라의 토속적이며 전통적인 이미지의 도깨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고려시대 무신이(김신)면서 자신을 버린 왕에 대한 恨을 품고 자신이 전장터를 누비며 사용했던 칼에 혼이 깃들어 환생한 존재이자 불멸의 존재로서 수 많은 세대와 시대를 걸쳐 살아오면서 현대적이며 귀족적인('노블리스'한) 이미지를 품은 채 어려운 사람이나 훗날 위인이 될만한 이들을 그림자처럼 도와주는 멋진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김신은 대를 이어 자신을 섬겨온 가신 집안인 劉家 사람들의 조력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떠나가는 모습, 즉 손자의 소자들을 땅에 묻으며 이들의 죽음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운 운명 속에서 불멸의 삶을 끝내고자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줄 단 하나의 존재를 기다립니다. 사랑이 이루짐과 동시에 헤어져야 할 슬픈 운명의 복선을 간직한채..

그 도깨비 신부가 바로 지은탁이죠.

 

 

그리고 김신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마저 버렸던 왕려가 기억을 잃은 저승사자로 등장하여 도깨비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코믹한 장면들을 연출하고, 전생의 아내이자 김신의 누이동생인 써니(김선)와 만나게 되는 설정을 통해 전생과 현생, 그리고 이승과 저승에 얽힌 애닯은 스토리의 여운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삼신할매와 덕화의 몸에 빙의된 짖궂은 신의 등장까지.. 판타지적인 요소 또한 이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판 도깨비를 묘사한 장면들은 그동안 우리가 민담이나 전래동화를 통해 알고 있었던 도깨비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국의 도깨비는 사람도 귀신도 요괴도 아닌 독특한 異形의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결코 사악하지 않으나 짖궂고 괴팍하하면서도 착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악인에게는 징벌을 내려주기도 하고 자신을 배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먹거리, 재물, 행운, 신비한 도구를 주기도 하여 일부 지방에서는 재물과 풍요의 신으로 숭배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토속 민담에서 전해지는 도깨비의 이미지들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며 힘이 센 남성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씨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 밤에 멀리서 보면 파란 도깨비불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 혼이 빠진 도깨비는 주로 피묻은 싸리 빗자루 형태로 남게 됩니다.
  • 전래동화에서는 뿔이 달려있고,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오니의 형상이 전래되어 토속적인 이미지와 혼재되었다는 주장이 있어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한국 도깨비에 얽힌 옛날 이야기 중에서 대표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건장한 소금장수 청년이 해가 질 무렵 고갯길을 넘어가려는데 건장하고 험상궂은 장정 하나가 나타나 난데없이 씨름을 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청년은 같이 씨름을 하였지만 도무지 승부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날을 꼬박 새어 동이 터오기 시작하자 불안해진 사내가 움찔하자 얼른 쓰러트렸다. 

청년은 사내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얼른 근처에 있는 나무에 줄로 꽁꽁 묶어두고 서둘러 고갯길을 빠져나갔다. 

다음날 다시 소금을 팔러 가는 길에 청년은 궁금하여 도깨비를 만났던 곳으로 가보았다.

그러나 나무에는 피 묻은 빗자루만이 덩그러니 묶여 있을 뿐이었다."

  

 

다음은 제 남편이 외할머니로부터 들었다는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마을 유지의 집에 경사가 있어 큰 잔치가 벌어졌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집 마당에서 밤늦도록 흥겹게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담장 밖에서 어느 처음보는 험상궂은 사내 하나가 마당을 내려다 보고 자신에게도 잔칫상을 차려달라고 소리를 쳤다.

시중 드는 사람들이 들어오라고 했지만 들어오지는 않고 계속 담장 밖에서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사람들이 이상한 자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가 아쉬우면 들어오겠지. 무슨 잔칫상을 담장 밖으로 차려다 줘야 하나?' 하고 그냥 무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하인들이 부엌에 들어가 조식을 차리려 하는데 부엌 찬장의 그릇들이 모두 맞물려 있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커다란 무쇠 가마솥 뚜껑들이 모두 가마솥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민담에서 전해지는 한국의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서 원혼이 된 귀신이 아니고, 신과 같은 존재도 아니며 일본의 오니처럼 잔인하게 사람을 해치는 요괴도 아닌 특이한 존재입니다.

생김새도 건장하고 우락부락한 사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괴팍하지만 나름 좋은 심성도 가지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성정을 지닌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도깨비가 되는 경우는 어떤 오래된 물건이나 자연물에 혼이 깃들어 탄생한다고 여겨지는데(그러나 깃들여진 물건에 그대로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 발현되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흔히 피묻은 빗자루가 비가 내리는 날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요정에 가깝지만, 생김새가 서양의 요정인 엘프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어서 어쩌면 이것은 한국만의 특이한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정작 도깨비는 닭피나 붉은색을 싫어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은탁이 써니의 가게 앞에서 배회하는 김신에게 "닭피 무서워 하죠? 아니 그러고보니까 그때는 내가 싫어서 닭집 알바 소개시켜 준거예요?"하는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밤 공동묘지에서 파란 불빛이 확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것 또한 도깨비불이라고 여기기도 했는데,, 드라마에서는 김신과 그의 가슴에 꽂힌 검에서 파란 불꽃이 일어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신비롭고 흥미로운 異形의 존재는 외국에서 그 유사성을 찾기 힘든 한국 특유의 토속적인 캐릭터로 민담을 통해 전승되어 왔으며,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에서는 공간이동 능력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 겸비한 멋진 현대판 캐릭터로 재탄생 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으며, 한때 많은 사람들을 '현망진창(현실 생활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에 푹 빠지게 한 장본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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