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근래 유례가 없던 격동의 한 해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은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계엄령과 관련하여 우리에게는 관심 밖 나라인 대만에서 한국을 걸고넘어지며, 계엄령을 소환했다가 난리가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만이란 나라가 우리에게는 워낙 존재감이 없고, 국내 관련 현안이 워낙 엄중하여 크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만, 대만 내에서 이 사안은 큰 논란을 빚었고, 우리 언론들도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약 38년 간 한때 세계 역사상 최장 계엄령 선포국이었던 대만의 계엄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만의 계엄령 역사와 성격

 

타이완에 대한 계엄령은 국공내전 시기부터 몇 차례 있었습니다.

잔혹했던 2.28 민변에 의한 1947년 2월의 계엄령도 있었으나 이 부분은 따로 다루겠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 패하여 타이완으로 이전을 시작하면서 1949년 5월에 발령된 계엄령 부분을 다룹니다.

 

1. 배경

 

1949년 5월 20일 오전 0시를 기해 타이완성 정부주석 겸 경비총사령 천청의 명의로 타이완성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계엄령과 동시에,,

국공내전을 반대하거나, 국공평화 회담을 주장하거나, 민생문제개선, 민주화 등을 요구하면 공산당 간첩, 용공분자, 혹은 친일파 및 독립분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 여기서 말하는 '독립분자'는 일본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자는 독립분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 이런 주장을 하는 독립분자의 주류는 국민당을 따라 타이완으로 이주해 온 외성인들이 아니라 대만 토착 현지인, 즉 대만 내성인(內省人)들이었습니다.

 

계엄령 기간 동안 대만에서는 주민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중국 대륙과 구분되는 대만 고유문화를 억압하고 중국화를 강요했는데,,

국어(國語,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만 토속어인 대만어(台語 타이위) 혹은 민남어(閩南語 민난위)'를 사용하면 엄중한 제재가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수만 명의 민간인들이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으며,

문화예술도 대만 특색의 것들이나 지역적인 문화들이 억압을 당했습니다.

 

계엄 초기에는 부정부패와 강력 사건 범인에 대한 혹독한 처벌이 이루어졌습니다.

 

국민당은 자신들이 부패로 인해 대륙을 빼앗겼다고 생각했기에 장제스 총통은 부패 처벌을 아주 잔인하게 행하였고, 흉악범들은 대만판 火燒島로 유배시키기도 했습니다. (화소도는 예전 홍콩 누아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탄압에 맞서 대만인들은 계엄령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정치 운동을 진행해 나갔고,,

강경 세력은 아예 중화민국 정부를 부정하며, 대만인 본위의 국가를 세우자는 대만 독립을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 집권당인 민진당의 정치 기반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타이베이-중정기념관의-장제스-청동좌상
타이베이 중점기념관에 있는 장제스 총통의 청동좌상. 中正이 본명, 장세스(蔣介石)의 '개석은 '字'임

 

2. 성격

 

지금 다루고 있는 대만의 계엄령은 

1949년 5월 20일부터 1987년 7월 15일까지 38년 1개월 25일 동안 이어졌는데, 시리아의 바트당 정권이 경신하기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계엄령 기간이었습니다.

 

이러한 대만의 계엄령은 우리가 겪은 군사 반란 및 친위 내란 쿠데타와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그 성격이 다릅니다.

 

  • 대만 계엄은 어쨌든, 반란 세력이 아닌 정부에 의해 발령되었다.
  • 따라서 반란, 내란에 의한 쿠데타 계엄은 아니다.
  •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 내우외환의 근거가 있는 계엄이었다.
  • 장제스에서 장징궈로 정권이 부자 세습되면서도 계속 이어진 계엄은 리덩후이 총통에 가서야 비로소 해제되었다.
  • 초기에는 매우 잔인한 공포 통치가 행해졌으나 장징궈 총통부터 점차 유화적으로 변화했다.
  • 대륙(중공)에 의해 상임이사국 퇴출 및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그리고 국가로도 인정을 못 받는 위기 상황 때문에 계엄령이 유지되었으나 80년 대 이후 실효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만의 계엄을 이해하려면, 동시에 타이완의 정치적 특수성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대만 정치의 특수성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공화정을 출범한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 패하여 대만 타이베이로 임시정부를 이전하면서 태동된 지역이라는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배경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1. 三民主義

 

대만의 정치를 이해하려면,,

먼저 대만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삼민주의' 국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서방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 국가 형태입니다만, 대만인들은 스스로 이렇게 부릅니다.

 

삼민주의란,,

國父인 쑨원(손문)에 의해 확립된 정치사상입니다.

삼민(三民)이란,,

민족주의(民族主義), 민권주의(民權主義), 민생주의(民生主義)를 표방한 것입니다.

 

권력 분립도 3권이 아니라,,

입법, 행정, 사법, 고시, 감사 이렇게 5권 분립입니다.

 

'민권주의'에 현대 민주주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삼민주의에 대한 부분은 따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 통일이냐? 독립이냐?

 

두 번째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은 대만의 전략적 위치와 정치 집단의 兩分化입니다.

 

반공국가인 타이완은 거대한 공산 국가인 중국 대륙이 코앞에 있고, 미국의 가라앉지 않는 천연 항공모함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 때문에 항상 안보에 위협을 받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필요한 모든 체제와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상당한 경제력을 보유하고도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뼈 아픈 현실에 처해 있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대만이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타이완과 중국을 兩國관계라 하지 않고, 兩岸(양안) 관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만의 대표적인 두 정치 세력의 노선 역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우리와 대조해 보면 다소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타이베이-중정기념당에서-대만-국기-게양식을-하고-있는-대만-군인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대만 국기(청천백일만지홍) 게양식

 

2-1. 국민당(중국 국민당) : 통일 지향

 

  • 대만의 장기 계엄령을 시행한 장제스의 초기 집권당입니다.
  • 타이완에서는 보수 정당의 포지션입니다.
  • 민진당에 대한 압도적 우위가 90년 대부터 서서히 감소하면서 민진당의 첸수이비엔에게 처음으로 정권을 내주면서 항상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지금도 연이어 민진당에게 정권을 내주고 야당의 위치에 있지만, 현재 국회 제1당입니다.

 

  • 중국에서 분리 독립을 추구하지 않고, 통일을 추구합니다.
  • 여기서 이야기하는 통일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대륙 수복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중국에서 대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 과거에는 중국에 대한 三不정책을 고수하는 등.. 철저한 반중, 반공 정책을 시행한 정당인데, 지금은 대만의 반독립 노선 때문에 오히려 '친중' 정당 프레임으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국민당이 친공산당 정당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 그래서 대만에서는 보수 정당인데 만약, 국민당이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국민의 힘에 의해 종북세력으로 몰렸을지도 모릅니다.

 

2-2. 민진당(민주 진보당) 독립 지향

 

  • 대만 토착 현지 내성인의 지지를 받고, 국민당의 대항마로 태동한 정당입니다.
  • 타이완에서는 진보 정당의 포지션입니다.
  • 과거에는 거대 보수 정당인 국민당 세력에 밀렸으나 최근 차잉원(여성)에 이어 현재 라이칭을 당선시켜 여당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궁극적으로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대만 공화국을 건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진당이 집권하면 중국이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 '친미' 정당의 프레임으로 회자되지만, 친일적 성향도 강합니다(대만인들이 원래 친일적 성향이 강합니다)
  • 중국을 너무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국민당보다 반공적 성향이 더 강해서, 만약 이 정당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진보임에도 불구하고, 남북 화해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에 대해 종북세력이라고 거품 물어가며 매도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두 정당을 단순히 우리와 같은 보수, 진보 진영으로 이해하면 다소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2-3. 대표적인 친일 성향 지역

 

그리고 타이완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친일 국가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식민 지배를 받은 국민이 어떻게 일본을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만인들은 국민당이든, 중국인이든, 일본이든, 서양 제국주의 국가든 다 자기들을 지배한 세력이기 때문에 일본이라고 해도 딱히 다를 것도 없다는 인식입니다.

그들의 역사의식 속에는 대만인인 자신들을 더 많이 착취한 것이 오히려 대륙인들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도 아니고, 중국인으로서 애국심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일제 치하에서도 새삼스럽게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려고 우리처럼 강하게 저항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본도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잔인한 폭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습니다.

 

초기에는 국민당에 대한 반감, 지금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혐오,  여기에 섬나라 특유의 기질까지 더해져 친일적인 성향이 유지되어 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까지 더해져 미국과 일본에 의지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도 친일적 성향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대만의 한국 콤플렉스 : 반한 감정과 한류

 

과거 한국에서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북한이 아니라 대만이었습니다.

질투와 시기를 비롯한 반한 감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가 4강에 올랐을 때 개X랄 떨던 중국과 판박이였죠.

 

대만의-반한-감정-관련-보도-사례-화면
대만의 반한 감정 보도 사례

 

1. 대만의 반한 감정

 

본격적인 대만의 반한 감정의 시작은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 때문이었습니다.

한중 수교는 우리에겐 북방외교의 방점을 찍는 사건이었지만, 대만에게는 그야말로 '시일야 방성대곡'이었던 사건이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이제는 자신들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다운 국가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과 일본은 아주 오래전에 대만을 손절하고 중국하고 수교를 맺었고,

얼마 전까지 사우디마저 떠나는 바람에, (대만이 돈 주고 수교 맺은 아프리카, 남미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마을 제외하고)

오직 한국만이 유일하게 끝까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 준 나라다운 마지막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만인들은 이미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다른 나라, 특히 지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일본도 일찌감치 털고 나갔을 때는 아무 소리 못 하다가, 마지막까지 있어준 한국에게는 마치 자신들의 주권을 빼앗은 나라처럼 반한 감정이 아주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 대사관이 있던 忠孝東路 거리에서 태극기를 함부로 불태우고, 한국말을 쓰면 막 때리고 그랬어요.

 

사실 중국과 수교 전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밀지를 받고 김종인 경제 수석이 리덩후이 대만 총통을 찾아와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다독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김종인이 바로 그 김종인입니다.

 

물론 대만 정부도 한국의 안보 특수성과 중국과의 수교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못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반한 감정을 이용해 정권의 위기를 해소하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안보 위기에 대비하고자 반한 감정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대만인들의 근자감도 반한 감정을 부추긴 요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항상 자신들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亞洲四小龍 :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중에서 탑(대가리)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는데, "한국, 니들이 어떻게 감히 나를 버려?"라는 근거 없는 쫀심도 크게 작용했던 것입니다.

 

2. 나 홀로 이불킥, 한국 콤플렉스의 시작

 

우리는 거의 관심도 없지만,,

대만에서 한국과 관련된 보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렇게 반란 감정을 쏟아내면서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정말 많았던 것이죠.

 

위에서 언급한 한중 수교 사건 이후, 대만의 반한 감정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더욱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도 자신들을 추월하고 나날이 국력의 차이가 확연해지자 나 홀로 이불킥 수준의 히스테리 증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을 들자면,,

대만이 개최하는 초청 대회인 존스배 농구 대회의 경우, 우리 국민들이 그런 대회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국과 대만의 경기 있으면, 마치 우리가 한일전을 하는 것 같이 아주 난리가 나는 분위기였습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죠.

야구야 말로 대만이 유일하게 세계 무대에서 그나마 비벼 볼만한 스포츠였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대만은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늘 한국을 보고 비교하고, 시기하고, 열폭하다가 이불 차고..

 

그러다가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자 대만인들의 기류도 이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음악,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모방하고 따라 하며 동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력의 차이와 K-컬처 파워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질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특히 대만의 정치인들은 항상 가만히 있는 한국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선전과 성과를 선전하기도 합니다.

늘 한국을 비교하고 끌어들여 정견을 발표하거나 성과를 비교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별 관심도 없는데 자꾸만 한국을 마치 이세계(異世界) 사역마 소환하듯 마음대로 필요할 때마다 소환하는 것이죠.

이러한 양태는 이번에 한국에서 벌어진 12.3 비상계엄 내란 쿠데타 사태를 두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대만은 왜 한국 계엄령을 언급했을까?

 

최근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대만의 집권당인 민진당에서 한국에서 발생한 내란 계엄령 사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한국의-윤석열이-비상계엄을-선포하는-장면을-보도한-대만-방송-화면
한국의 비상계엄을 보도한 대만 언론, 자막 해석 '어제는 남한, 내일은 대만?'

 

1. 대만의 한국 계엄령 발언 : 민진당의 발작 버튼

 

최근 대만의 집권당인 민진당에서 한국의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심한 비난의 역풍을 맞자 서둘러 삭제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가 된 내용이기도 한데,,

우리 국민들이 워낙 대만에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현재 엄중하고 심각한 국내 문제만으로도 복잡하기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아 어물쩍 지나가긴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집권당이긴 하지만, 어째서 '과거 국민당 계엄령 치하에 있었던 진보 정당인 민진당이 이따위 몰상식한 발언을 한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대만의 정치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민진당이 저지른 이러한 만행의 동기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첫째, 현재 민진당은 여당이지만 여소야대로 죽을 맛입니다.
  • 둘째, '자신들도 친미, 한국의 여당도 친미, 그러니까 마치 한국 여당이 같은 편?' 뭐 이런 스탠스도 있는 것 같습니다.
  • 셋째, 대만은 여전히 윤석열과 국민의 힘을 잘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친중적 보수와 친미적 진보의 대만, 그리고 보수 자체가 없는 한국..

이 두 나라는 정치적, 역사적 배경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정당 포지션 성향을 절대 단순 비교하여 대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대만의 정치권에서 한국의 엄중한 사안을 가져다가 정치적으로 마음대로 이용한 이번 사안은 매우 괘씸하기 짝이 없고, 파렴치한 짓거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 동물의 왕국 대만 의회와 대만에 등장한 K-응원봉

 

최근 대만의 의회(입법원)가 난리가 났습니다.

 

의원 소환과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는데,

공직자소환법(公職人員選擧罷免法)과 헌법재판소절차법(憲法訴訟法) 개정안을 다수 야당이 여당과의 난투극 끝에 가결했다.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 같은 물리적 난투극이 난무한 것입니다.

우리 국회도 과거 이런 일이 있었죠.

가장 최근에는 국회선진화 법을 어긴 국민의 힘의 일명 '나빠루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편,,

의회 밖에서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였는데,
많은 참가자들이 K팝 아이돌 그룹을 포함해 좋아하는 가수의 응원봉을 밝히며, "내 최애는 대만"이라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기도 했습니다.

 

대만 언론들도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인피니트, 세븐틴, NCT, 미스에이 등.. 다양한 한국 아이돌 그룹 응원봉이 등장했다면서 이들이 최근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시위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대만은,,

선진국이라 여겼던 한국의 충격적인 계엄령 사태를 보고, 과거 자신들의 계엄 치하의 트라우마를 소환하면서 계엄법 개정에 대한 본격적 정쟁(政爭)의 서막에 돌입했습니다.

 

대만-시위-현장에-등장한-K-응원봉
대만에 등장한 K-응원봉

 

에필로그

 

이상으로,,

대만 정치의 특수성, 한국에 대한 대만인들의 콤플렉스, 한류를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최근에 벌어진 계엄령 사태와 관련한 대만 정계의 소식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내란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는 탓에 심리적 내전 상태에 있습니다.

 

오늘 대만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지만, 남의 나라 일에 대해 이처럼 무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사태가 하루빨리 정상적으로 온전히 마무리되어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24년은 우리 한국민들에게 정말 다사다난한 격동의 한 해가 되고 있습니다.

부디 2025년에는 다시 한번 국란을 극복한 우리 국민들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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